〈암살자(들)〉, 좋았다는 말에 괄호가 필요한 영화
배우도 질문도 좋았습니다. 다만 실화 앞에서는 영화에 쉽게 설득된 저부터 의심하게 되더군요
재미없으면 재미없었다고 쓰면 됩니다. 좋았으면 좋았다고 쓰면 되고요. 곤란한 건 분명 재미있게 봤는데 선뜻 좋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감상은 이미 앞으로 달려갔는데 판단이 뒤에서 소매를 붙잡는 영화라고 해야 할까요.
〈암살자(들)〉이 제게 그랬습니다.
보는 동안에는 여러 번 영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배우들이 좋았고, 사건을 파고드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무엇보다 오래전에 정리되어 책 속으로 들어간 일을 굳이 다시 꺼내 질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저는 원래 좋아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자 그 질문이 작품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을 믿은 거지?'
생각해 보면 제목부터 조금 수상합니다. 암살자가 아니라 암살자(들). 괄호는 참 편리한 기호입니다. 넣었다 빼도 문장이 성립하고, 확신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 발쯤 물러설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인가, 여러 사람인가, 우리가 알던 이야기가 정말 전부인가. 영화는 그 틈을 파고들고, 적어도 보는 동안에는 제법 성공합니다.
우선 배우들이 좋습니다. 유해진은 이런 역할에서 묘한 힘이 있습니다. 영웅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데,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이 감당하는 무게가 보입니다.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자기 생활도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박해일은 다른 방향에서 긴장을 만듭니다. 한 번 물기 시작한 의문을 좀처럼 놓지 않을 것 같은 얼굴입니다. 이민호가 들어오면서 두 사람 사이에 조금 다른 속도도 생기고요. 살아온 시간도, 사건을 보는 방식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의문을 나눠 듭니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잠시 세 사람의 대화 크기로 줄어드는 순간들이 저는 좋았습니다.
다만 조금 얄궂은 문제가 있습니다. 배우를 좋아할수록 인물이 덜 보일 때가 있거든요. 제가 마음을 준 게 인물인지, 유해진과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원래 좋아해서인지 슬슬 헷갈렸습니다. 생활을 짊어진 형사, 물러서지 않는 기자, 뜨거운 신입. 모두 이해하기 쉬운 자리이고, 그만큼 익숙합니다. 배우들은 그 익숙함을 얼굴과 연기로 능숙하게 덮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배우들이 메워 버린 그 빈칸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사람들이 조금 더 이상한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예상한 곳에서 화내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주저했으면 어땠을까. 진실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그 과정에서 사람이 조금씩 망가지거나 달라지는 모습을 더 보고 싶었습니다.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초반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누군가 사실 하나를 말하면 다음 사람이 나타나 앞의 이야기를 흔듭니다. 이제 알겠다 싶으면 다른 기록이 나오고, 그 기록을 따라가면 처음 들은 말이 다시 이상해집니다. 이런 영화에서는 총격전보다 말 한마디가 더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무심히 지나간 문장을 뒤늦게 기억해 내는 순간 관객도 사건에 끌려 들어가니까요. 저도 머릿속으로 증언과 기록을 맞춰 보며 한동안 꽤 즐거웠습니다.
문제는 제가 영화를 보러 온 건지 회의록을 검토하러 온 건지 헷갈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정보가 쌓일수록 이해는 늘었는데 감정은 줄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말했고, 어떤 기록과 충돌하며, 다음엔 뭘 확인해야 하는지 따라가느라 정작 그 일을 겪는 사람의 표정을 놓쳤습니다. 영화는 계속 앞으로 가는데 저는 잠깐 멈추고 싶었습니다. 설명 하나만 덜 하고 얼굴을 몇 초만 더 보여 줬으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 시간이 조금만 있었으면. 머리로 따라가는 것과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다른 일이더군요.
반대로 시대를 보여 주는 방식에는 마음이 갔습니다. 시대극이 힘을 주기 시작하면 미술팀의 노고부터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저희가 이 시대를 이렇게 열심히 재현했습니다' 하고 세트가 먼저 인사하는 영화들이요. 〈암살자(들)〉은 그 유혹을 비교적 잘 참습니다. 옷과 거리와 사무실이 사람보다 앞으로 나오지 않아서, 역사적 사건을 구경한다기보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훔쳐보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이런 데 약합니다. 지금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날에도 누군가는 월급을 걱정했고, 누군가는 집에 늦는다고 말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기가 본 일이 훗날 책에 실릴 줄도 모르고 잠들었을 겁니다.
역사는 나중에야 역사가 됩니다. 당사자에게는 그냥 오늘이었겠지요.
그래서 특별출연은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유명한 얼굴이 나올 때마다 반갑기는 합니다. 그런데 '어, 저 배우!' 하는 순간 저는 현재로 튕겨 나왔습니다. 겨우 과거에 들어가 있었는데 영화가 제 어깨를 툭 치며 배우 이름 맞히기 문제를 내는 기분이었습니다. 한두 번이면 재미인데, 반복되면 꽤 치명적입니다. 이 영화에 필요한 건 유명한 얼굴을 발견하는 즐거움보다 처음 보는 얼굴을 정말 그 시대 사람이라고 믿어 버리는 경험이었습니다.
영화가 언론과 기록의 책임으로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조금 더 무거워집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고작 몇 글자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 때문에 직업을 잃고, 가족이 위험해지고, 내일의 생활이 흔들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정의로운 사람보다 겁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먼저 보였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화면 이쪽의 저는 끝까지 파헤치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거는 건 러닝타임 정도니까요. 하지만 내 월급과 가족과 앞으로의 생활이 걸려 있다면 저는 아마 훨씬 많은 핑계를 발명했을 겁니다.
'여기까지 알아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하겠지.'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적어 놓고 보니 셋 다 제 입에 꽤 익은 말이네요...)
사람은 물러서기 시작하면 제법 논리적으로 물러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질문하는 인물들의 고집이 멋있다기보다 조금 서글펐습니다.
동시에 이 지점부터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집니다. 진실을 추적하는 영화이면서 언론의 책임에 관한 영화이고, 기록을 누가 만드는가에 관한 영화이며, 역사를 다시 질문하는 행위에 관한 영화가 됩니다. 하나하나는 흥미로운데, 모두가 동시에 제 손을 잡아당깁니다. 결국 저는 처음 품었던 질문을 몇 번 놓쳤습니다.
영화가 성실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너무 성실합니다. 준비해 온 말을 하나도 빼먹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요. 그런데 대화라는 게, 준비한 말을 전부 한다고 좋은 대화가 되는 건 아닙니다. 가끔은 한 문장을 삼키는 편이 앞의 한 문장을 더 오래 남깁니다. 〈암살자(들)〉에도 그런 침묵이 조금 더 필요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제 감상은 꽤 까다로워집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질문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질문이 끝난다면 역사책은 연구의 출발점이 아니라 정답지가 되어 버릴 테니까요. 문제는 질문하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논문보다 훨씬 셉니다. 논문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문장을 읽으면 우리는 대개 가능성 정도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두운 방, 의미심장한 표정, 음악과 침묵으로 같은 가능성을 보여 주면 머릿속엔 거의 기억처럼 남습니다. 그게 영화의 힘이고, 실제 역사를 다룰 때는 바로 그 힘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을 바깥의 소란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웠습니다.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배후로 단정한 작품이 아니라는 취지로 반박했습니다. 저는 어느 쪽 목소리가 더 큰지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영화가 어디까지 기록에 기대고 어디서부터 상상을 보탰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많이 화냈다고 틀린 것도 아니고, 해명했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결국 확인해야 합니다. 조금 귀찮더라도요.
관련 영상을 올렸던 이동진, 지무비에 이어 최태성의 영상까지 비공개로 바뀌었다는 소식도 접했습니다. 최태성은 이유를 따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서, 그 빈칸에 제 마음대로 이유를 써넣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 풍경은 씁쓸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누군가는 감동하고, 누군가는 화내고, 누군가는 자료를 들고 와 반박합니다. 그러다 처음엔 못 봤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작품에 관한 논쟁이 작품을 말한 사람에 관한 전쟁으로 바뀌면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두가 입을 닫으면 평화로워 보이기는 합니다. 토론이 잘 끝나서가 아니라 토론할 사람이 없어져서지만요.
정리하자면, 저는 배우들이 좋았고,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집요함이 좋았고, 그 시대를 누군가의 생활처럼 보여 주는 순간들이 좋았습니다. 반면 인물은 배우의 매력에 비해 익숙했고, 설명은 자주 길었고, 특별출연은 몰입을 깼습니다. 주제를 한꺼번에 끌어안느라 처음의 날카로운 질문도 조금 무뎌졌고요. 무엇보다 실제 역사와 영화적 상상이 맞닿는 자리에서는, 영화가 주는 감동과 제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일부러 떼어 놓고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불편함까지 포함해서 꽤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 정말 관심 없는 영화였다면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겠지요. 보고 나서 자료를 찾아보고, 제가 무엇을 사실로 알고 있었는지 되짚고, 장면 하나를 다시 의심해 봤습니다.
관객을 완전히 설득하는 것만이 좋은 영화의 조건이라면 저는 이 작품을 선뜻 좋았다고 쓰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질문 하나를 심어 화면 밖까지 들고 나가게 하는 것도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암살자(들)〉은 분명 제게 무언가를 해낸 영화입니다.
다만 저는 그 질문과 함께 하나를 더 가져왔습니다. 의심입니다. 영화가 보여 준 역사에 대한 의심이기도 하고, 영화에 쉽게 설득된 저 자신에 대한 의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목의 괄호가 계속 남았나 봅니다. 괄호는 안의 말을 강조하면서도 본문에서 살짝 떼어 놓습니다. 있지만 완전히 속하지는 않은 것, 말했지만 아직 확정하지는 않은 것. 이 영화를 좋아하는 제 마음도 지금 딱 그 자리에 있습니다.
좋았다고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에는 아직 괄호가 필요합니다.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