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끝낼까 해》, 좋은 대사가 너무 많아서 내 쪽에서 먼저 끝내고 싶어졌다
초반 차 안의 대화는 메모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영화가 너무 멀리 가버린 것일 수도 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래서 넷플릭스 찜 목록에 오래 넣어두고도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던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결국 재생 버튼을 누르게 만든 건 제시 버클리였다.
그리고 적어도 초반까지는 그 선택이 꽤 만족스러웠다.
눈이 쏟아지는 길을 달리는 차 안.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장면의 거의 전부인데도 이상할 만큼 집중하게 된다. 특히 대사를 중요하게 보는 나에게 이 영화의 초반부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관계에 대한 미묘한 불안, 상대방에게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의 거리감,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끊임없이 문장으로 흘러나온다.
‘이건 메모해두고 싶은데.’
그런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제시 버클리의 얼굴도 좋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이미 마음 한편으로는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사람의 표정. 친절하게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어딘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얼굴. 그 모호한 감정을 영화는 꽤 정교하게 붙잡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사가 많은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문제는 그 좋은 것이 너무 많았다는 데 있다.
말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멀어졌다
처음에는 인물의 마음을 궁금하게 만들던 대사가 어느 순간부터 영화가 자신의 지성을 증명하기 위한 문장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시와 철학과 예술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진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생각해볼 만한 문장이다. 그런데 좋은 문장이 계속 등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배가 부르는 것처럼, 이 영화의 대사도 그랬다.
처음에는 받아 적고 싶었는데 나중에는 그만 듣고 싶어진다.
영화가 내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알아듣는지 시험하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그리고 제이크의 부모를 만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 이상함이 꽤 흥미롭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시간의 흐름도 정상적이지 않다. 방금 전까지 존재했던 세계의 규칙이 어느 순간 아무 설명 없이 깨져 있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겟 아웃》이 떠올랐다.
연인의 부모를 만나러 외딴 집에 들어갔는데 뭔가 이상하다.
이 집에는 분명 비밀이 있고, 사람들도 수상하다.
‘아, 이제 뭔가 나오겠구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가려는 곳은 그런 쪽이 아니었다.
이상한 영화에서 난해한 영화로
불안은 미스터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대신 현실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나이가 바뀌고, 이름이 바뀌고, 직업이 달라지고, 기억과 시간의 경계가 흐려진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기억인지 상상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진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추측했다.
혹시 이 여자가 죽은 사람인가.
제이크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건가.
부모의 집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 아닌가.
시간을 오가는 이야기인가.
머릿속에서 계속 가설을 만들어본다.
그런데 영화는 그 가설들을 확인해주는 대신 또 다른 문제를 던진다.
그리고 또 던진다.
한두 번 정도 현실이 어긋날 때는 미스터리다.
계속 현실이 어긋나면 관객은 규칙을 찾는다.
그런데 규칙조차 쉽게 보여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 관객에게 남는 말은 아주 단순해진다.
뭐지?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보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뭐지?
감독은 알고 있지만 관객에게는 말해주지 않는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영화는 아예 친절하게 이해시키는 일을 포기한다.
학교, 노인, 뮤지컬, 춤, 공연.
이야기가 진행된다기보다 이미지와 기억과 환상이 서로 섞이며 흘러간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여러 장면을 다시 조립해볼 수는 있다.
젊은 제이크와 학교의 노인은 어떤 관계일까.
여자는 정말 실재하는 인물일까.
부모의 시간이 끊임없이 변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처음부터 계속 등장했던 ‘끝낸다’는 말은 단순히 연애를 끝낸다는 뜻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앞에서 이상하다고 느꼈던 장면들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거의 알 수 없었던 의미를, 영화를 본 뒤 해설을 찾아보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이 과연 좋은 영화 경험일까.
물론 모든 영화가 친절할 필요는 없다.
모든 질문에 정답을 줄 필요도 없다.
관객이 해석할 여백을 남기는 영화도 좋아한다.
하지만 여백과 공백은 다르다.
생각하게 만드는 것과 알아맞히게 만드는 것도 다르다.
이 영화는 종종 그 경계를 위험할 정도로 넘어간다.
어려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착각
아마 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 점이 매력일 것이다.
한 번 보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장면 하나하나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영화.
두 번째 관람에서 전혀 다른 영화가 되는 작품.
분명 그럴 수 있다.
실제로 다시 본다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단서가 눈에 들어올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이걸 다시 공부해야 하나?’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읽었어야 했나.
감독에 대해 더 알고 봤어야 했나.
뮤지컬과 인용된 작품들까지 알아야 했나.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내가 이 영화와 끝내 가까워지지 못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영화가 반드시 깊은 영화는 아니다.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실 자체가 작품의 깊이를 증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에는 분명 흥미로운 생각이 많다. 외로움과 후회, 지나가버린 시간과 선택하지 못했던 삶,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
그런데 그것을 관객에게 건네는 방식이 너무 복잡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 결국 아무 말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결국 내 쪽에서 먼저 끝내고 싶어졌다
그래도 제시 버클리는 좋았다.
아마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 가장 큰 이유도 그녀였을 것이다.
처음 차 안에서 보여준 미묘한 표정부터 부모의 집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혼란, 그리고 후반부에 현실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쉽다.
나는 초반의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꽤 좋아했다.
두 사람만 있는 자동차 안에서 오가는 대화와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하고, 충분히 지적이며,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런데 영화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더 깊이 들어가고, 더 비틀고, 더 많은 상징을 쌓고, 끝내 관객이 따라올 수 있는 길까지 지워버린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생각했다.
내가 놓친 것이 너무 많은 건가.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한 뒤에는 생각을 바꿨다.
꼭 내가 놓친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영화가 너무 멀리 가버린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제목만큼은 영화를 보는 동안 몇 번이고 절묘하게 떠올랐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마음을 설명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처럼 들렸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그래도 끝까지 봤다.
제시 버클리 때문에.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